여긴 나만의 대나무 숲인 걸까. 완전히 버린 폐허같지만 여전히 한번씩 와서 글을 쓰고 싶어 진다. 그리고 이곳에 모아둔, 예전에 썼던 내 글들을 한 번 씩 본다. 이 블로그엔 내 정체성은 없고 그저 내 생각들만이 정신 없이 쌓여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않고 모아두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 오면 나라는 사람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변하지 않았구나, 라는 걸 깨달을 수 있다. 그건 조금 우울해 지는 사실이기도 하지만 사실 아주 기쁘기도 한 일이다.


2011년을 좀 정리해 볼까.

올해는 전체적으로 일종의 침체기였던 것 같다. 일에서도 입사 이후 최대의 슬럼프, 좌절, 스트레스, 의욕 상실을 전부 겪었다. 이 또한 피가 되고 살이 될 경험이라면 이겠으나,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올해의 나는 그리 생산적인 노동자는 아니었다. 일이란 게 어떻게 항상 즐겁겠느냐만은... 뭐, 이 고민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한 해 동안 열광하고 좋아한 것도 많지 않았다. 책이나 음악에 대한 내 열정도 이젠 좀 시들한가 싶다. 그 무엇도 특별히 중요하지 않은 채 너무 많은 것들을 스쳐 지나오면서 1년이 지나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다 보니 뭔가를 기억하는 일이 힘들어졌다. 원래도 좋은 기억력의 소유자는 아니었지만, 요즘은 그저 모든 것이 스윽 하고 흘러가 버린다.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으니까 기억하지도 않게 된다. (아, 갑자기 떠올랐다. 어쩌면 이 모든 게 그 여름날 이후로 그렇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나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척' 하고 싶어졌다.)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차를 사고 운전을 시작한 거랑, 스쿠버 다이빙. 그리고 책을 한 권 번역했지, 참. (이 일은 물론 뿌듯한 일이긴 하지만 휴식과 여가가 부족해지고 건강에 위협을 주는 작업이라서 앞으로는 신중히 생각해 볼 문제다.)

올해부터 좀 달라진 것. 이제는 엄마랑 아빠가 내가 결혼하기를 바라시는 것 같다. 예전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천천히 하라고 하시더니! 물론 나도 결혼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주변의 선배들과 연애나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내가 조금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사람들은 연봉과 집안을 거론하는데 나는 아직도 마음이 통하는 사람 운운하고 있으니.

아주 오랜만에 그런 사람을 만났던 것 같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좋고 끌리는 사람. '우리 사귀어 볼까요?' 하고 동의를 구하며 다가가는 거 말고,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이 사랑에 빠지는 그런 거. (...  음. 이 얘기는 아직도 회복기가 끝나질 않은 상태라서 또 눈물이 날 거 같으니까 여기까지만 쓰자. 뚝.)


내년 목표를 몇가지 정했는데, 일이나 자기계발 면에서의 목표는 여기 자세히 적기 좀 그렇고...뭐랄까, 좀 오글거리지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올해의 나는 너무 내 생각만 하고, 잃어가는 게 많은 것 같다는 생각에 자꾸 욕심이 생기고, 생각도 짧아 지고...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었다. 일에서의 스트레스가 자꾸 물욕이 되어 돌아 오던데, 내년엔 진정 원하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다른 자잘한 욕심을 버리고 싶다.

그리고 사소한 잡담이라도 글 좀 많이 쓰기.
내가 올해 8월 20일에 이렇게 썼더군:
"글을 써야 한다. 적어도 쓸 때의 나는 쓰지 않을 때의 나보다는 관조적이고, 덜 이기적이며, 한 조각이라도 더 생각하고, 무언가를 배우고 다짐을 한다. 쓰지 않는 나는 대체로 피상적이고 단순하며 유치하고, 표면과 '나'만을 생각한다."

이 생각은 여전히 고대로 유효하다.
내년엔 생각하고 탐구하고 글 쓰면서 살자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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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V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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